우간다 최초의 거주민은 반투계 종족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후 17세기말 나일-햄어계 종족이 우간다 북부로 이동해왔으며, 18세기에는 남부까지 이주해왔으며 이들은 부간다 왕국을 세웠다. 1840년대 아랍인은 상아와 노예무역을 위해 이 지역에 들어왔고 1862년 영국의 존 해닝 스피크(John Hanning Speke, 1827~1864)와 제임스 오거스터스 그랜트(James Augustus Grant, 1827~1892)는 유럽인으로서는 최초로 부간다 왕국을 횡단했다. 카바카(Kabaka, 통치자) 무테사(Mutesa Walugembe Mukaabya, 1838~1884) 1세는 1877년 영국 성공회 선교사들이 부간다 왕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것을 허용했다.
1884년 무테사가 죽자 왕위를 계승한 므왕가(Mwanga, 1866~1901)는 선왕과는 달리 기독교도들을 박해했다. 그 후 아랍인들이 카바카 므왕가와 기독교 선교사들을 제거하고 왕국을 지배했다. 기독교도인 간다족의 도움으로 복귀한 므왕가의 왕국은 다시 유럽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889년 독일인 카를 페터스(Karl Peters, 1856~1918)는 므왕가와 보호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 조약은 1890년 영국과 독일이 남위 1°선 이북 지역은 영국의 영향권하에 둔다는 내용의 조약이 체결되면서 무효화되었다. 같은 해 영국 동아프리카회사는 영국 정부를 대신해서 이 지역의 관리를 맡았다. F.D. 루가드(Frederick John Dealtry Lugard Baron Lugard, 1858~1945)는 부간다와 므왕가를 동아프리카회사의 관리하에 둔다는 조약을 맺었다. 이 회사는 서부의 은콜레 왕국, 토로 왕국과도 보호조약을 맺었다. 1884년 부간다는 공식적으로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고, 1896년에는 부뇨로 왕국과 부소가 왕국도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1890년대 후반 영국의 보호령은 빅토리아나일 강 북쪽 지역까지 확대되었다.
1914년에 남서부 국경에서 몇 차례 소규모 전투가 벌어졌지만,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 우간다는 거의 침략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때 우간다는 경제적 자립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이 종료된 1945년 최초로 아프리카인이 입법위원회에 진출하였다. 이후 아프리카인들의 정치참여가 증가하면서 1955년에는 각료체제가 도입되었으나 부간다 왕국의 간다족 통치자는 정부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1950년대 후반 자치를 원했던 부간다 왕국은 우간다로부터의 독립을 원했다. 1962년 완전한 자치가 이루어져 간다족 출신 베네딕토 키와누카(Benedicto Kiwanuka, 1922~1972)가 초대 총리로 취임하였으나, 그해 4월 실시된 선거에서는 랑고족의 밀턴 오보테가 총리로 선출되었다.
종족과 지역에 따라 정치적으로 분리되어 있던 우간다는 1962년 10월 드디어 독립하고, 1963년 부간다의 통치자 무테사 2세가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5] 그러나 대통령과 총리, 다양한 종족 대표자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다. 1966년 무테사를 축출한 오보테는 1967년 새 헌법을 공포하고 스스로 대통령직을 차지한 뒤 모든 왕국을 해체시키고 중앙 집권주의적인 체제를 수립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디 아민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쫒겨났고 그 후 이디 아민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사실 1962년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하여 아프리카에서 꽤 안정적인 나라[6]였으나, 아프리카의 검은 히틀러라는 별명을 가진 희대의 독재자 이디 아민(1971년~1979년)이 집권하면서 한때 세계 최악의 독재 국가로 유명해졌다.[7]
학살도 학살이지만 인도계 이민자들을 강제 추방한 것도 피해가 컸다. 우간다에는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시절 건너온 인도계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영화 라스트 킹에 보면, 양복점에서 허드렛일은 흑인이 하고 주인은 인도인이다. 세 얼간이의 등장인물 차투르도 우간다 출신이라는 언급이 나온다. 바로 경제적 주역이던 인도계 이민자들을 강제 추방하면서 자기 친척이나 부하들에게 금융관련 요직을 맡겨 버린 것.[8] 금융 지식도 없는 낙하산들이 안정적으로 굴러가던 이 나라 금융 및 경제를 파탄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21세기가 되어도 내전이나 빈부격차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인도계의 경우 아프리카, 특히 같은 영국 식민지였던 동아프리카, 남아프리카 지역에 오래 전부터 이민을 많이 가서 여러 나라의 금융권을 꽉 쥐고있는 경우가 많다.[9] 특히나 동아프리카 국가들 경우 은행처럼 돈 되는 곳이면 인도인들이 오너이거나 직접 앉아있다.[10]
여하튼 이렇게 이디 아민이 개막장 독재를 하다가 정신이 나갔는지 1978년 탄자니아를 침공하는 짓을 저지르자 당시 탄자니아의 니에레레 대통령은 이디 아민을 축출, 우간다에 새 정부를 수립시키기로 결정하고 이디 아민 독재정권의 탄압을 피해 탄자니아에 망명해있던 반 이디 아민 세력들 주축으로 규합된 우간다 민족해방전선과 함께 탄자니아를 침공한 우간다군 병력들을 궤멸시키고 그 다음 이듬해인 1979년에 우간다 영내로 진격해 이디 아민 정권을 몰아내는데 성공하여 유슈프 룰레 수반의 과도 임시 정부가 성립되었다. 이후 선거를 통해 이디 아민에게 쫒겨났던 밀턴 오보테가 선거를 통해 다시 대통령이 되지만 문제는 이 선거가 부정선거였다는 점이다. 이에 반발 여론이 거세지자 밀턴 오보테는 다시 무자비한 학살을 저질러 공식적 통계에 의하면 약 10만명 반군 주장으로는 약 2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요웨리 무세베니가 쿠데타를 일으켜 밀턴 오보테를 축출하는 데 성공하고 현재까지도 요웨리 무세베니가 통치를 하고 있다.
그렇게 한때 이디 아민에 저항군을 이끌었던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이 역시 저항군 출신이던 밀턴 오보테, 오켈로 등과 여러 권력투쟁을 거쳐 집권한 1986년 이래 37년 동안 현역으로 독재 중이다. 정치를 잘하면 모르겠는데 무세베니는 이디 아민보다 낫다고는 해도 역시 폭정을 저지르고 점점 나라가 막장으로 치닫고 있어 그에 대한 국내외적 비판이 커지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한편 요웨리 무세베니가 집권한 1986년 이후 내전이 더 심해졌는데, 무세베니가 우간다 내전에서 승리해 정권을 잡은 뒤 이에 반대하는 반군과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우간다는 서로 죽고 죽이며 기아와 에이즈가 판치는 아수라장이 됐다.
현재 우간다에서는 이른바 우간다 내전이 벌어지고 있다. 우간다 내전이란 1987년부터 현재까지 우간다 북부지역에서 일어난 "우간다 인민 해방군(정부군)"과 "신의 저항군the Lord's Resistance Army(LRA)" 이라는 "기독교계 반정부군"과의 내전으로 현재까지도 여전히 치열한 전투와 학살이 반복되어, 아프리카에서 진행중인 최장기간의 내전이라 불린다.[11] 그리고 신의 저항군을 이끌고 있는 조지프 코니는 인터폴에서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을 정도의 강력 전범이다.
🔴개요
1884년 무테사가 죽자 왕위를 계승한 므왕가(Mwanga, 1866~1901)는 선왕과는 달리 기독교도들을 박해했다. 그 후 아랍인들이 카바카 므왕가와 기독교 선교사들을 제거하고 왕국을 지배했다. 기독교도인 간다족의 도움으로 복귀한 므왕가의 왕국은 다시 유럽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889년 독일인 카를 페터스(Karl Peters, 1856~1918)는 므왕가와 보호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 조약은 1890년 영국과 독일이 남위 1°선 이북 지역은 영국의 영향권하에 둔다는 내용의 조약이 체결되면서 무효화되었다. 같은 해 영국 동아프리카회사는 영국 정부를 대신해서 이 지역의 관리를 맡았다. F.D. 루가드(Frederick John Dealtry Lugard Baron Lugard, 1858~1945)는 부간다와 므왕가를 동아프리카회사의 관리하에 둔다는 조약을 맺었다. 이 회사는 서부의 은콜레 왕국, 토로 왕국과도 보호조약을 맺었다. 1884년 부간다는 공식적으로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고, 1896년에는 부뇨로 왕국과 부소가 왕국도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1890년대 후반 영국의 보호령은 빅토리아나일 강 북쪽 지역까지 확대되었다.
1914년에 남서부 국경에서 몇 차례 소규모 전투가 벌어졌지만,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 우간다는 거의 침략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때 우간다는 경제적 자립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이 종료된 1945년 최초로 아프리카인이 입법위원회에 진출하였다. 이후 아프리카인들의 정치참여가 증가하면서 1955년에는 각료체제가 도입되었으나 부간다 왕국의 간다족 통치자는 정부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1950년대 후반 자치를 원했던 부간다 왕국은 우간다로부터의 독립을 원했다. 1962년 완전한 자치가 이루어져 간다족 출신 베네딕토 키와누카(Benedicto Kiwanuka, 1922~1972)가 초대 총리로 취임하였으나, 그해 4월 실시된 선거에서는 랑고족의 밀턴 오보테가 총리로 선출되었다.
종족과 지역에 따라 정치적으로 분리되어 있던 우간다는 1962년 10월 드디어 독립하고, 1963년 부간다의 통치자 무테사 2세가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5] 그러나 대통령과 총리, 다양한 종족 대표자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다. 1966년 무테사를 축출한 오보테는 1967년 새 헌법을 공포하고 스스로 대통령직을 차지한 뒤 모든 왕국을 해체시키고 중앙 집권주의적인 체제를 수립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디 아민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쫒겨났고 그 후 이디 아민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사실 1962년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하여 아프리카에서 꽤 안정적인 나라[6]였으나, 아프리카의 검은 히틀러라는 별명을 가진 희대의 독재자 이디 아민(1971년~1979년)이 집권하면서 한때 세계 최악의 독재 국가로 유명해졌다.[7]
학살도 학살이지만 인도계 이민자들을 강제 추방한 것도 피해가 컸다. 우간다에는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시절 건너온 인도계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영화 라스트 킹에 보면, 양복점에서 허드렛일은 흑인이 하고 주인은 인도인이다. 세 얼간이의 등장인물 차투르도 우간다 출신이라는 언급이 나온다. 바로 경제적 주역이던 인도계 이민자들을 강제 추방하면서 자기 친척이나 부하들에게 금융관련 요직을 맡겨 버린 것.[8] 금융 지식도 없는 낙하산들이 안정적으로 굴러가던 이 나라 금융 및 경제를 파탄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21세기가 되어도 내전이나 빈부격차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인도계의 경우 아프리카, 특히 같은 영국 식민지였던 동아프리카, 남아프리카 지역에 오래 전부터 이민을 많이 가서 여러 나라의 금융권을 꽉 쥐고있는 경우가 많다.[9] 특히나 동아프리카 국가들 경우 은행처럼 돈 되는 곳이면 인도인들이 오너이거나 직접 앉아있다.[10]
여하튼 이렇게 이디 아민이 개막장 독재를 하다가 정신이 나갔는지 1978년 탄자니아를 침공하는 짓을 저지르자 당시 탄자니아의 니에레레 대통령은 이디 아민을 축출, 우간다에 새 정부를 수립시키기로 결정하고 이디 아민 독재정권의 탄압을 피해 탄자니아에 망명해있던 반 이디 아민 세력들 주축으로 규합된 우간다 민족해방전선과 함께 탄자니아를 침공한 우간다군 병력들을 궤멸시키고 그 다음 이듬해인 1979년에 우간다 영내로 진격해 이디 아민 정권을 몰아내는데 성공하여 유슈프 룰레 수반의 과도 임시 정부가 성립되었다. 이후 선거를 통해 이디 아민에게 쫒겨났던 밀턴 오보테가 선거를 통해 다시 대통령이 되지만 문제는 이 선거가 부정선거였다는 점이다. 이에 반발 여론이 거세지자 밀턴 오보테는 다시 무자비한 학살을 저질러 공식적 통계에 의하면 약 10만명 반군 주장으로는 약 2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요웨리 무세베니가 쿠데타를 일으켜 밀턴 오보테를 축출하는 데 성공하고 현재까지도 요웨리 무세베니가 통치를 하고 있다.
그렇게 한때 이디 아민에 저항군을 이끌었던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이 역시 저항군 출신이던 밀턴 오보테, 오켈로 등과 여러 권력투쟁을 거쳐 집권한 1986년 이래 37년 동안 현역으로 독재 중이다. 정치를 잘하면 모르겠는데 무세베니는 이디 아민보다 낫다고는 해도 역시 폭정을 저지르고 점점 나라가 막장으로 치닫고 있어 그에 대한 국내외적 비판이 커지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한편 요웨리 무세베니가 집권한 1986년 이후 내전이 더 심해졌는데, 무세베니가 우간다 내전에서 승리해 정권을 잡은 뒤 이에 반대하는 반군과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우간다는 서로 죽고 죽이며 기아와 에이즈가 판치는 아수라장이 됐다.
현재 우간다에서는 이른바 우간다 내전이 벌어지고 있다. 우간다 내전이란 1987년부터 현재까지 우간다 북부지역에서 일어난 "우간다 인민 해방군(정부군)"과 "신의 저항군the Lord's Resistance Army(LRA)" 이라는 "기독교계 반정부군"과의 내전으로 현재까지도 여전히 치열한 전투와 학살이 반복되어, 아프리카에서 진행중인 최장기간의 내전이라 불린다.[11] 그리고 신의 저항군을 이끌고 있는 조지프 코니는 인터폴에서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을 정도의 강력 전범이다.
밀턴 오보테, 이디 아민, 요웨리 무세베니같은 독재자들이 오랫동안 집권했다. 민주주의 지수는 4.49점, 세계의 자유는 34점으로 민주주의 체제가 제대로 들어서지 않은 국가치고는 다소 높은 편이다.
대통령은 요웨리 무세베니다. 1986년부터 대통령에 집권했고 현재까지도 38년째 집권하고 있다.
또한 우간다는 남수단과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과 더불어 아동 포르노에 대한 법적 규정이 없는 곳이다. 즉 소아 대상으로 벌어지는 성적인 범죄랑 성행위에 관해서 어떠한 법적 대응이 없다는 말. 당연히 각국의 세계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을수밖에 없다.
그리고 2013년에 우간다에서 미니스커트 등 선정적인 옷의 착용을 금지하는 반(反) 포르노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는데, 이 법안은 가슴, 허벅지, 엉덩이 등 은밀한 신체 부위를 노출하거나 성적 흥분을 야기하는 행동을 금지하고 있으며, 또 풍속 문란을 유발하는 외설적인 행위도 금지 대상으로 지정하였다. 여담으로, 1970년대 우간다에서는 독재자 이디 아민의 시절에 미니스커트 착용이 금지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2021년 8월. 우간다 헌재가 미니스커트 금지법을 폐지선언했다.#
우간다는 국내외 언론에 대해서 엄청난 규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서 일간지와 정기 간행물들이 발행될 뿐 언론의 자유가 완전히 없는 나라다. 우간다의 주요 방송사인 라디오 우간다와 우간다 텔레비전은 정부가 소유하고 있다. 1970년 언론의 자유가 허용되어 많은 일간지와 주간지가 발행되기도 했으나, 1973년 신문 발행을 금지하는 정부 포고령이 발표되면서 많은 언론인들이 처형되거나 구금되기도 했다.
2018년에는 우간다 정부는 소셜미디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논란이 커졌다. #
금융 수준이 한국보다 높다는 정보가 있으나 사실은 통계상의 함정이다. 조세회피처 항목 참고.
야생동물로는 산악고릴라, 침팬지, 올리브개코원숭이, 표범, 사자, 기린, 사바나얼룩말, 영양, 아프리카코끼리, 아프리카흑따오기, 회색관두루미, 흰코뿔소, 하마, 하이에나, 악어, 독사, 독수리, 뿔닭, 타조[15] 등이 서식하고 있다.
우간다는 1995년 헌법에 영어를 공용어로 규정했으며, 2005년의 개정헌법에는 스와힐리어를 제2의 공식어로 규정하였다. 우간다는 영연방의 회원국이다. 영어로 방송도 한다.
빅터 키플란갓이 2023 부다페스트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2024년 파리 올림픽 남자 육상 10,000M에서 조슈아 체프터게이가 올림픽 기록을 세우면서 금메달을 따냈다.
이렇게 나라가 여러 주요 기독교 종파와, 이슬람 및 소수의 토속 신앙으로 나뉘어졌고, 21세기 들어 조지프 코니라는
총포를 신앙하는 화물신앙도 있는 듯 하다.
2020년 5월 27일에 우간다에서 딸이 이슬람에서 천주교로 개종했다는 이유로 폭행당하고 화상까지 입은 사건이 발생되었 다.
동성애 금지법이 수십년 전에 시행되어 에이즈 감염률을 낮추었다는 선동이 있으나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시절에나 적용된 법이었으며, 강력한 금지법은 2014년 발의되었으며 결국 부결되어 발효도 못했으나 2023년 3월부터 국회에서 통과되어 반 동성애법이 발효되었다. 그와 비슷한 법이 우간다에서 통과되거나 의논된 것은 2000년대 이후 일이다. # 반면 에이즈
한편 경제상황의 진전이 늦어 오랫동안 답보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소아나 농촌 등 취약계층의 경우 정보파악도 힘들다고 한다.
2013년 대한민국은 우간다와 협약을 맺어 2015년 2월 $27,000,000를 보조금으로 지불하였고 2015년 12월 31일 우간 다 엔테베 공항에서 시스템 개선 사업 최종 사업자로 대한민국의 한국공항공사가 선정되어 관리사업회사가 되었다.
우간다에서 29살의 오토바이 택시 운전기사가 경찰서 안에서 스스로 몸에 불을 지르는 극단적 선택으로 숨졌다고 BBC가
우간다에서 고릴라 라피키를 죽인 밀렵꾼이 징역 11년을 선고받았다.#
9월 16일에 우간다 북동부에서 200여명의 죄수가 알몸(!)으로 탈옥한 사건이 발생했다.#
12월 25일에 앨버트 호에서 선박이 침몰해 최소 26명이 사망했다.#
2021년 2월 18일에 우간다에서 수류탄을 주워 가지고 놀던 어린이 6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당했다.#
2021년 4월 11일에 프랑스의 토탈사가 우간다 관리들과 유전 개발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 퍼온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