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은
일본으로
규슈 지방에서
목탄 대용품으로 쓰기 위해 여러 개의 구멍을 뚫은 석탄 덩어리에서 유래하였다. 그 모양이 마치
연밥을 닮았다고 하여 '연꽃연탄'이라고 불렸다고. 이후로 선박용 연료로 쓰였고 1940년대 이후로 가정용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이 연탄은 한반도와 중국대륙에도 전파되었고 산업용으로 쓰이게 되었다. 전후에도 연탄으로
코타츠를 데우는 등 가정용으로 널리 쓰였지만 경제력 향상에 따라 중독사고 위험이 있는 연탄 대신에 전기 코타츠로 대체되어감에 따라 쓰임새를 잃었고 이후로 사양길로 접어들어 식당에서 요리용으로 쓰는 정도 수준으로 수요가 급감했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때 전파되었지만 당대에는 산업용으로 주로 쓰던 수준이었고, 가정용으로는 별로 보급되지 않다가 1950년대 이후로 산림 황폐화 대책의 일환으로 연탄이 보급되기 시작한 이래로 많이 쓰였다. 1980년대 초반까지 이걸 연료로 하는
연탄 보일러를 둔 집이 많았지만, 그 뒤
석유 보일러가 유행하고 도시가스가 공급되면서 급격히 사라졌다. 특히 급격한 생활수준의 향상과
제6공화국 이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따른 폐광의 급증 때문에 공급과 수요가 모두 급락해 한 때 사양산업이 되기까지 하였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서민의 아이콘이었다.
석유나
보일러의 가격이 높았던 시기(특히
오일 쇼크)에는 웬만큼 돈 있는 사람 아니면 연탄불을 땠기 때문. 그래서 당대의 작품 중
가난한 이들이 등장하고, 배경이
겨울인 문학 작품이나 드라마라면 열에 아홉은 반드시 연탄을 사용하는 장면이 있다. 새벽에 연탄 갈기 위해 일어나는 아버지라든지, 쌀 사고 연탄 사고 남은 돈을 걱정스럽게 셈해 보는 어머니의 묘사 등. 1980년대 초중반까지에 태어난 세대라면 당시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월동준비라면 김장과 더불어 연탄을 사두는 것을 가리켰다.
여담이지만, 이 당시 '책임감있고 성실하며 유능한 가장'의 행동양식 중 하나가 '1년 쓸 연탄을 초여름에 들여놓는다'는 것이었다. 기후조건에 따라 수요가 크게 변하는 특성상 연탄 수요가 큰 가을이나 겨울을 앞둔 늦가을에 비해 연탄 수요가 적고 성수기와도 멀리 떨어진 초여름
[9]에는 일 년 중 연탄값이 가장 싸고 연탄의 품질도 가장 좋았던 것, 연탄제조 업체 입장에서는 수익이 별로 남는게 없더라도 연탄을 만들어 팔아야 했다. 생산 라인을 스탑하면, 재 가동하는데 비용이 더 드니까, 생산라인 유지를 위해 최소한의 생산량은 만들어야 했던 것, 그리고 이렇게 만든 연탄을 무한정 쌓아 둘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팔아치워야 했다. 이들에게서 물건을 공급받는 도매상이나 소매상도 마찬가지, 겨울만 되면 떼돈을 벌게 해주는 공급처이니 마냥 나몰라라 할 수는 없고, 이렇게 밀어내기 식으로 나오는 물량을 울며 겨자먹기로라도 받기는 받아야 했다. 근데 쌓아둘 수 있는 수량은 다들 한계가 있으니, 헐값에라도 사가는 사람이 있다면 연탄회사 입장에서도 매우 고마운 존재였다. 그리고 어차피 생산량을 줄여야 했으니, 원자재 공급 압박도 받지 않는 김에 성수기보다 양질의 연탄을 공급하는 것으로 이 시기에 연탄을 구입하는 사람들의 구매욕을 더욱 자극한 것.
[10]하지만 얼핏 간단해 보이는 이 조건을 수행하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 일단 1년간 쓸 수백장의 연탄을 미리 들여놓을 경우 그 연탄을 보관할 공간
[11]이 필요했다. 비를 맞거나 습기를 너무 먹지만 않도록 적당히 지붕 있는 창고만 갖추면 연탄 보관에 그리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기 집이 있거나 셋집이라도 마당이나 창고까지 집을 모두 빌렸으면 모를까 도심지역 셋방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연탄을 잔뜩 사 봤자 보관할 수 없었던 것. 또한 당시의 서민 입장에서는 1년간 쓸 수백 장의 연탄을 한 번에 살 만한 금전적 여유가 없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한 번에 물건을 사 버릴 돈이 없어서 임대료를 내고 빌려쓰다가 결국 임대료 누적액이 물건값을 뛰어넘었지만 그래도 임대료를 계속 내며 물건을 빌려쓰고 있다는 이야기처럼 물건값이 쌀 때 한 번에 사 버리는 것이 이득이라는 걸 잘 알지만 가계상 여유자금이 모자라 장기적으로 손해를 보면서도 매번 조금씩 사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던 것. 예를 들어, 저축할 여유 없이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처지라면 손해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매일 번 돈으로 그날 쓸 연탄을 한 장씩 비싼 값에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2]그리고 초여름에 연탄값이 쌌던 이유에는 이 시기 구매하는 기업중 다수가 대기업이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저런 무연탄 제조, 도매업체들이 자금 순환을 못해서 부도가 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13], 이렇게 여름에 연탄업체들이 부도가 나면 바로 겨울에 연탄 가격이 올라가 버리고 사회불안의 요인이 되었다. 이러면 당시 지지율 하락을 우려한 정부가 대기업들을 불러서 어차피 겨울에 난방을 위해 쓸 게 아니냐며 대량을 구매 하게 하곤 했다. 대기업들은 억지로 이런 연탄을 구매했고 대신 가격을 많이 낮춰서 샀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연탄이 참 많이 쓰였지만 소득수준의 향상에 따라 점차 가스보일러나 기름보일러가 대세가 되었고, 연탄 생산량도 급속히 줄어듬에 따라 연탄 난방은 사장되어갔다. 다만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고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기 시작하면서 기름보일러로 난방을 하기에 곤란한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고, 물 순환방식의 구조가 도입되어 과거 연탄가스의 중독가능성이 사라지고, 하우스 농업의 난방이나 고기구이집들 중에서 연탄구이집등이 성행하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급등하기 시작했다. 가격이 저렴하고 열을 잘 발산하며 보관하는 것도 용이한 편이기 때문에 서민들의 연료로 다시금 사랑받았다.
북한과
중국에서는 아직 널리 사용 중인데, 중국에서는 북부지역 아파트는 중앙난방을 주로 쓰기 때문에 주로 단독주택이나 야외에서 쓰는 경우가 많고, 북한은 상당히 일상적으로 쓴다.
[14]문제는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이후, 급감한 국내 무연탄 공급능력으로는 이러한 새로운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과잉 공급으로 비축되어 있단 정부 비축탄의 경우, 2004년으로 정점을 찍은 후 그 이후로 계속 방출하기 시작해서 2008년부로 기존 비축탄이 거의 고갈되는 지경에 이르자, 지금은 무연탄도 일부 수요를 수입에 의존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에서는 2023년 9월 기준으로 74,167 가구가 연탄으로 난방을 하고 있다.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석탄 가격 인상, 석탄 지원 비용 중단 등을 중심으로 한 석탄 수요 감소 정책을 펼치고 있는 관계로 지속적으로 탄광 사업은 감소하고 있다.
2023년 난방비 대란과 같은 도시가스 요금상승 현상이 일어나 난방비가 미친듯이 상승하자 다시 연탄을 쓰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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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초창기에는 서양권의 가공 형태를 그대로 모방하여 벽돌 모양에 2~3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으나 이후 원통형에 구멍이 9개인 구공탄[2]이 개발되어 연탄의 대명사가 되었다. 나중에는 19공탄, 22공탄, 25공탄 등이 나왔지만[3] 구멍 개수와 관계없이 구공탄으로 정착되었다. 휘발 성분이 적고 탄소 함량이 높은 무연탄은 태울 때 연기가 나지 않고 비교적 단단하고 열량도 많으며, 연소 속도가 느린대신 오래 타기 때문에 온돌 난방구조로 장시간 안정적인 난방연료를 요구하는 한국의 거주환경상 석탄 중 가정용 연료로 최적이다.[4] 참고로 고구마나 밤 따위의 간식을 구워먹기 딱 좋으며 달고나를 만들기도 비교적 쉬운 환경이 연탄 난로다.[5]
규격화가 되어 있고, 집게로 집어서 다룰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석탄을 태우는 것에 비해서는 매우 편리해졌다.(점토를 섞어서 양도 늘리고...)
영어로 번역했을 때 가장 가까운 낱말은 Briquette인데, 이건 정확히 말하면 연탄이라기 보다는 가연성 분말을 뭉쳐서 덩어리로 만든 연료, 즉 조개탄의 형태에 가까운 연료를 뜻한다. 그나마도 현대 영어권에서 저 단어를 이야기하면 난방용 연탄이 아닌 바비큐 그릴에 쓰는 전용 연료[6](charcoal briquette)를 연상하는 경우가 많다.
연탄은 검은색을 띠며, 다 사용하고 나면 흰색[7] 계열의 밝은 색으로 바뀐다.
2. 역사[편집]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때 전파되었지만 당대에는 산업용으로 주로 쓰던 수준이었고, 가정용으로는 별로 보급되지 않다가 1950년대 이후로 산림 황폐화 대책의 일환으로 연탄이 보급되기 시작한 이래로 많이 쓰였다. 1980년대 초반까지 이걸 연료로 하는 연탄 보일러를 둔 집이 많았지만, 그 뒤 석유 보일러가 유행하고 도시가스가 공급되면서 급격히 사라졌다. 특히 급격한 생활수준의 향상과 제6공화국 이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따른 폐광의 급증 때문에 공급과 수요가 모두 급락해 한 때 사양산업이 되기까지 하였다.
일본에서는 전기코타츠가 널리 보급된 이후로는 요리용으로만 쓰인다. 특히 야키니쿠를 할 때에는 가스불보다 이것이 제격이라고 한다. 한국도 물론 연탄구이집이 많이 있다.
여담이지만, 이 당시 '책임감있고 성실하며 유능한 가장'의 행동양식 중 하나가 '1년 쓸 연탄을 초여름에 들여놓는다'는 것이었다. 기후조건에 따라 수요가 크게 변하는 특성상 연탄 수요가 큰 가을이나 겨울을 앞둔 늦가을에 비해 연탄 수요가 적고 성수기와도 멀리 떨어진 초여름[9]에는 일 년 중 연탄값이 가장 싸고 연탄의 품질도 가장 좋았던 것, 연탄제조 업체 입장에서는 수익이 별로 남는게 없더라도 연탄을 만들어 팔아야 했다. 생산 라인을 스탑하면, 재 가동하는데 비용이 더 드니까, 생산라인 유지를 위해 최소한의 생산량은 만들어야 했던 것, 그리고 이렇게 만든 연탄을 무한정 쌓아 둘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팔아치워야 했다. 이들에게서 물건을 공급받는 도매상이나 소매상도 마찬가지, 겨울만 되면 떼돈을 벌게 해주는 공급처이니 마냥 나몰라라 할 수는 없고, 이렇게 밀어내기 식으로 나오는 물량을 울며 겨자먹기로라도 받기는 받아야 했다. 근데 쌓아둘 수 있는 수량은 다들 한계가 있으니, 헐값에라도 사가는 사람이 있다면 연탄회사 입장에서도 매우 고마운 존재였다. 그리고 어차피 생산량을 줄여야 했으니, 원자재 공급 압박도 받지 않는 김에 성수기보다 양질의 연탄을 공급하는 것으로 이 시기에 연탄을 구입하는 사람들의 구매욕을 더욱 자극한 것.[10]
하지만 얼핏 간단해 보이는 이 조건을 수행하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 일단 1년간 쓸 수백장의 연탄을 미리 들여놓을 경우 그 연탄을 보관할 공간[11]이 필요했다. 비를 맞거나 습기를 너무 먹지만 않도록 적당히 지붕 있는 창고만 갖추면 연탄 보관에 그리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기 집이 있거나 셋집이라도 마당이나 창고까지 집을 모두 빌렸으면 모를까 도심지역 셋방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연탄을 잔뜩 사 봤자 보관할 수 없었던 것. 또한 당시의 서민 입장에서는 1년간 쓸 수백 장의 연탄을 한 번에 살 만한 금전적 여유가 없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한 번에 물건을 사 버릴 돈이 없어서 임대료를 내고 빌려쓰다가 결국 임대료 누적액이 물건값을 뛰어넘었지만 그래도 임대료를 계속 내며 물건을 빌려쓰고 있다는 이야기처럼 물건값이 쌀 때 한 번에 사 버리는 것이 이득이라는 걸 잘 알지만 가계상 여유자금이 모자라 장기적으로 손해를 보면서도 매번 조금씩 사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던 것. 예를 들어, 저축할 여유 없이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처지라면 손해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매일 번 돈으로 그날 쓸 연탄을 한 장씩 비싼 값에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12]
그리고 초여름에 연탄값이 쌌던 이유에는 이 시기 구매하는 기업중 다수가 대기업이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저런 무연탄 제조, 도매업체들이 자금 순환을 못해서 부도가 나는 경우가 많았는데[13], 이렇게 여름에 연탄업체들이 부도가 나면 바로 겨울에 연탄 가격이 올라가 버리고 사회불안의 요인이 되었다. 이러면 당시 지지율 하락을 우려한 정부가 대기업들을 불러서 어차피 겨울에 난방을 위해 쓸 게 아니냐며 대량을 구매 하게 하곤 했다. 대기업들은 억지로 이런 연탄을 구매했고 대신 가격을 많이 낮춰서 샀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연탄이 참 많이 쓰였지만 소득수준의 향상에 따라 점차 가스보일러나 기름보일러가 대세가 되었고, 연탄 생산량도 급속히 줄어듬에 따라 연탄 난방은 사장되어갔다. 다만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고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기 시작하면서 기름보일러로 난방을 하기에 곤란한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고, 물 순환방식의 구조가 도입되어 과거 연탄가스의 중독가능성이 사라지고, 하우스 농업의 난방이나 고기구이집들 중에서 연탄구이집등이 성행하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급등하기 시작했다. 가격이 저렴하고 열을 잘 발산하며 보관하는 것도 용이한 편이기 때문에 서민들의 연료로 다시금 사랑받았다. 북한과 중국에서는 아직 널리 사용 중인데, 중국에서는 북부지역 아파트는 중앙난방을 주로 쓰기 때문에 주로 단독주택이나 야외에서 쓰는 경우가 많고, 북한은 상당히 일상적으로 쓴다.[14]
문제는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이후, 급감한 국내 무연탄 공급능력으로는 이러한 새로운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과잉 공급으로 비축되어 있단 정부 비축탄의 경우, 2004년으로 정점을 찍은 후 그 이후로 계속 방출하기 시작해서 2008년부로 기존 비축탄이 거의 고갈되는 지경에 이르자, 지금은 무연탄도 일부 수요를 수입에 의존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에서는 2023년 9월 기준으로 74,167 가구가 연탄으로 난방을 하고 있다.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석탄 가격 인상, 석탄 지원 비용 중단 등을 중심으로 한 석탄 수요 감소 정책을 펼치고 있는 관계로 지속적으로 탄광 사업은 감소하고 있다.
2023년 난방비 대란과 같은 도시가스 요금상승 현상이 일어나 난방비가 미친듯이 상승하자 다시 연탄을 쓰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