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 동북아지부 소식 == 제3국 이탈자들의 용어의 정의

굿워커스
2024-09-28

1. 북한 이탈여성의 개념

    . 북한 이탈 여성은 북한을 탈출하여 제 3국에 머무르고 있는 자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한 언어이다.

          (박정순. "북한 이탈 주민의  가정 폭력 및 사회적 차별 경험이 심리 사회 적응에 미치는 영향" 서울 기독 대학교 대학원   박사학 위 논문.2014)

    . 북한 이탈 주민이란 단어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닌 이름으로 변질과 반동 분자라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하여 2005년부터 

        새로운 명칭인 "새터민"이라는 용어가 생겨났지만 공식적인 명칭으로는 정해지지는 않았다.


2. 북한 이탈 여성의  제 3국 체류 신분

    . 북한 이탈 여성은 밀 입 국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못하고 안전을 위해 은신 또는 자주 거처를 옮기는 상황 

       이기 때문에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는 힘들며 단지  추측하여 발표하고 있다.

    . 1990년대 말의 한 조사 결과를 통해 보면 제 3국 체류 탈 북 주민들은 75.5%가 여성이며   제 3국  동북 3 성 지역은 여성 비율이

       90.9%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여성들의 연령은 20대(61.4%)와 30대(25.2%)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이들은 자신과 가족의 생계 유지를 위해 이탈하여 제 3국에 불법 체류 하고 있는 이들은 체포와 강제 북 송의  두려움 속에서 

      현지인들에   의해  자행 되는 인권 유린, 인권 침해를   감내하며 궁핍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 그녀들은 최소한 자신들 만큼은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잘 참고 견디어 형편이 나아지면 북한에 남겨두고 온 가족의

      생계 유지에 도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실낱 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 제 3국 체류 이탈 여성들은 자신들의 고된 생활을 벗어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을 시도한다.

     하나는.      한국으로 향하는 방법     

      하나는. 제 3국 현지인에게 결혼을 하여 정착하는 방법

      이에 따라 제 3국 내  북한 이탈 여성들의  일부는 주로 NGO와 개인 활동가들의 지원으로 한국으로의 입국을 시도 하고 있으며

      또,  하나는 장기 체류하는 동안 마련한 비용과 나름 대로 의 사회 연결 망을 활용하여 자력으로 한국으로 입국을 시도하고 있다.

      한편, 제 3국에서 한 족 또는 조선족과 결혼하여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미는 여성들도 있다.


3. 북한 이탈의 원인

    . 분단 후 북한은 주체 사상 이념과 고조로 조직된 사회 구조 아래 통제함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사회 질서를 유지하여 왔다.

    . 1980년대를 시작하면서 제 2차 7개 년 계획에 소련과 중국의 원조 약속이 이행되지 않으면서 경제적인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통일부 통일 교육 원 "북한 이해" 서울: 통일부 통일 교육원 2009. 135

    . 1990년대 북한의 위기는 소비에트 사회 주의 권의 해체와 동 구 사회주의 붕괴, 중국 시장 경제의 도임으로 그간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받아오던 식 유, 원 자제 등의 수입 중단 및 감축이 주요 사업 부문에서 원료 투입량 감소로 이어져 전 

      사업의 연관 관계가 단축되었다.

    . 1995년에는 급기야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하고 이후, 식량 배급이 중단되면서 사회의 기강들이 헤이 해지면서 북한

      사회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 1996년대 이후는 대량 탈 북을 초래하였고 수 백만 명을 아사에 이르게 하였다.  

          이영석. 정유경 엮음 "어디까지왔나, 무엇이 쟁점인가?" (서울 :우양 2005)45


   가) 정치적 불만

       . 북한은 1958년부터 8차례 전체 주민 성분을 조사하였다. 

       . 전체 주민을 3계층 '핵심 계층''동요 계층' '적대 계층' 으로 구분하고 이를 다시 세분하여 51개 분류로 북한 식 계급

         정책을 수립하였다.     (통일부 통일 교육원,'북한 이해 2010' 219-220)

        첫 번째, 핵심 계층(핵심 군중) 노동자, 고농(머슴), 빈농, 시무원, 노동당원, 혁명열사, 유가족, 8-15 이후 양성된 

                      인텔리, 6.25 피살자 가족, 전사자 가족, 후방 가족, 영예 군인 가족 등 12개로 분류된다.

       두 번째, 동요 계층(기본 군1중)은 소, 중상인, 수공업인, 소 공장 주, 하층 접객업자, 원남자 가족(제2. 3분류), 중농,

                       민족자본가, 중국 귀환민, 일본 귀환민, 8.15 이전 양성된 인텔리, 안일, 부화, 방탕한 자, 접대부 및 민신 

                      숭배자, 유학자 및 지방유지, 경제사범 등 18개 분류하고 있다.

       세 번째, 적대계층(복잡 군중) 8-15 이후 전락한 노동자, 부농, 지주, 친일친, 미주의자, 반동 관료배, 천도교 청우 당원, 

                       입북자, 기독교신자, 불교신자, 천주교 신자, 출당자,철직자, 적기관 복무자, 체포,투옥자 가족, 간첩 관계자, 

                       반동, 반혁명 종파분자, 처단자 가족, 출소자 정치범, 민주 당원, 자본가, 월남자 가족(제1부류) 등 21개 

                       분류하고 있다. 그중 적대 계급 잔여 분자로 지주, 부농, 친일파, 친미파, 악질 종교인, 종파분자, 간첩, 기업가, 

                       상인, 월남자 가족, 등을 특별 대상자로 분류 되었다.

                    계층  별 특징 

                        첫 번째,  상위 계층일 수록 고등교육과 특수 교육 등 교육 기회가 많이 부여되며 또한 지위가 높은 직업을 

                                         배정 받으며 소득 수준이 높다.

                        두 번째,  북한의 핵심 계층에 속하는 주민은 사상 범이나 중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핵심적 지위를 유지 할 뿐 

                                         아니라 그 지위는 후손에게도 이어진다.

                                         반면 출신 성분이 나쁘면 개인적 능력에 관계없이 상위 계층으로의 진입이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

                                         성분에 따른 차별의 문제로 불평불만을 하면 정치 체제 비판으로 간주되어 정식 재판도 없이 

                                         '반국가 범죄'자가 되어 중벌에 처해지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제기되고 발생할 때 북한을 탈출하는

                                         동기가 된다.


    나)식량 난

          1990년대 전후로 가시화된 북한의 경제적 침체와 연이은 자연 재해는 곧 엄청난 식량 난으로 이어진다.

          1997년과 1998년을 정점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였고 이와 맞물려 이 시기에 북한을 이탈하는 주민의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식량 난이 최고조에 도달한 시점인 1998년에 좋은 벗들에서 조사한 북한 식량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며, 

          가족 구성원 9.249명 중 사망자는 2.653명으로 28.7%를 차지 하였는데 28.7%를 차지하였는데 6세 이하의 유아 및 

           어린이의 사망률은 48.9% 특히 3세 이하의 사망률이 50%를 넘었다고 보고하였다.

          사망의 원인은 아사가 전체의 39.6%, 폐결핵, 파라티푸스 및 기타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56%에 달했다.  

               (좋은벗들, '북한 식량난의 실태- 북한 식량난민770만명 면담 조사결과 보고서-(1998)

          1995년에서 1998년까지 북한 당국은 '고난의 행군' 이라고 하면서 식량 난을 이겨내려고 하였지만 대부분 주민은 

          풀뿌리 나무껍질과 벌래 등으로 생명을 연장하였고  급기야 독풀을 먹고 사망하는 주민도 속출 하였다.

                안양대 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학 위논문. 안양 대학교 2016.29

          더불어 최악의 식량난으로 부모와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아이는 장마당을 돌아다니는 '꽃제비'로 전락하였다.

         '꽃제비'란 용어는 1990년대 후반 식량난으로 인해 만들어진 신조어로 '무리를 지어 떠 돌아다니며 구걸하거나 

          훔쳐 먹고 빼앗아 먹는 20세 이하의 청소년들'을 지칭한다.

          20대부터 40대까지는 '청제비' 40대 이상은 '노제비'라는 불리며 처절한 식량난까지 이르게 되었다.


다) 해외 정보 습득

     그동안 철저히 통제해왔던 폐쇄 사회에서 해외 동포들의 북한 방문과 해외 유학생 및 해외 파견자들의 북한 귀환으로 

      조금씩 해외 정보들이 유입되었고, 식량난으로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고 주민들의 이동이 늘어나고 중국 조선족 보따리 

      장사꾼을 통해서 북한 주민들은 외부 정보를 접하고, 대한민국과 중국 발전을     알게 되면서 분한 내부에서 정보 유통이 

      빨라지고 있게 된다.

      과거에는 주민들의 이동이 엄격히 통제되었으나 지금은 경제 상황이 악화와 식량난으로 인해 이동을     눈감아 주면서 

      탈북의 한 요인이 되었다.  

 

라)브로커의 상업화

    탈북 루트는 선교사나 브로커나 비슷하다. 탈북 부르커들이 어떻게 탈북난민 지원에 성공적으로 네크워크를 했는가 하면

    철저한 폐쇠성에 주목해야 한다.

    중국 정부의 정책 때문에 음성적으로 활동할 수 박에 없었던 탈북 브러커들 절대로 공개 되진 않았다.


                 

              "북한이탈여성의 중국체류과정 분석을 통한 룻기 '고엘'과 헤세드'  정신의 선교적 적용" 논문 중에서

                                 현) 동북아 지부 선교학 박사(Ph.D)학위논문    (백석대학교 기독교전문대학원)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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